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아카이브 2020년 8월 26일

2017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나는 기자 지망생이었다. 가고 싶었던 언론사에서 두 번째 최종 탈락 통보를 받고 나니 이 길을 더 고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로 모두 정리했다.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간 날 A와 나눈 대화가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이제 뭐할 거예요?”
“모르겠어요. 일단 놀게요. 연말이기도 하고, 취준한다고 여태까지 제대로 놀지도 못했으니까.”
“아니, 뭘 몰라요. 계획 없어요?”
“없어요. 일단 놀고 생각해보려고요.”
“아니, 진짜 없다고요?”
“네. 진짜 없어요”
“진짜요?”
“진짜요.”

싸운 건 아니었다. A는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을 닮은 날카로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A가 그렇게 당황 혹은 황당한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험이라는 게, 취업 준비라는 게, 결국엔 자기 자존감 깎아 먹으면서 버티는 싸움인데, 나도 참 자존감 높은 사람인데, 그런데도 이게 참 쉽지가 않네요.”

‘이제 더 이상 깎아 먹을 자존감이 남지 않았소’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스터디원들의 사기마저 꺾을까 꾹 참았다. 어쨌거나 당시 나는 계속되는 낙방에 멘탈이 터진 중도 탈락자였고 혹시라도 그 이미지가 다른 스터디원들이 그리는 자신의 미래에 유리조각처럼 파고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대한 긍정적인 뒷모습을 남기려 했다. 후회도 미련도 걱정도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헤어졌다. 실제로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지금도 그 흔적이 보일 만큼 컸다.

‘GV 빌런 고태경’ 초반부를 읽으며 정말 많은 문장에 밑줄을 쳤다. 이를테면 “실패한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같은 문장.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손에 잡힐 듯하다 멀어지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같은 문장이나 “너무 오래 추구한 꿈이 환상을 만든 건 아닐까.” 같은 문장.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지망생이라는 신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실패한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여기 있잖아…”라며 홀로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돼 버렸다는 걸. 어쩌면 그 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걸.

언론인 지망생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아랑에 올렸던 후기를 다시 읽어봤다. 신세 지던 친구 집에서 짐을 빼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썼던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실패담입니다.”라며 시작한다. 똑같은 삶을 살아도 성공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이유가,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한 이유가 되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그런데 고태경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한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쭉 나 자신을 비웃고 미워했다. 오랫동안 추구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것, 당시에는 유예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영영 잃어버린 것들이 지망생이라는 신분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때문에 그 후기는 앞으로도 계속 실패담으로 남아 있을 운명이었다. 주인공인 나는 영원히 실패자였을 것이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이 문장을 만났다.

“패배를 실패로 착각해선 안 된다. 패배가 상대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라면 실패는 나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졌다면 실패한 게 아니다. 패배한 것이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겼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 대신 실패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패배했다고 실패한 건 아니다. 나는 패배의 순간마다 실패를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나 성공은 무언가를 뒤돌아 본 뒤 내리는 평가의 언어다. 이젠 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51 대 49로 승패가 갈릴 때는 승리만큼 패배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게 다 패배와 실패를 구별하는 틀을 얻은 덕이다. 권석천 기자는 말장난이 아니라고 했지만, 말장난이면 어때. 원래 말장난 속에 통찰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패배한다. 승리로만 점철된 성공한 삶이란 판타지다. 하다못해 메시조차 월드컵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바로 얼마 전에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팀이 8:2로 박살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메시는 실패자인가? 그럴 리가. 그는 여전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심지어 지난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다 득점, 최다 도움,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슈팅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승리와 패배를 쌓아왔다.

두 번이나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신 ‘가고 싶었던 언론사’는 전형마다 문자를 통해 결과와 다음 일정을 안내했다. 그 문자의 마지막 문장은 항상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였다. 묘했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고 근거가 확실해야 할 공채 경쟁에서 굳이 지원자의 행운을 빌다니. 하지만 현재 나는 이 문장을 다른 의미로 읽는다. 승리하거나 패배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나의 승리가 온전히 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닌 것처럼 나의 패배도 온전히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한다. 한 시절이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시절이 시작된다.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0년 8월 26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7호 :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7호 :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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