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이직

아카이브 2020년 7월 29일

행복한 직장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직장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조금 비틀어봤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서. 이제 겨우 3년차에 접어든 주제에 모든 경우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친구들, 일로 만난 사람들, 들려오는 얘기들.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고민을 안고 오늘의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내 경우에는 자괴감이라는 요인이 가장 컸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자괴감. 이전 직장은 사기업치고는 워라밸이 나쁘지 않았다. 막내였지만 인간관계로 고민한 적도 없고 처우도 지역과 업종을 고려하면 박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기간의 정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에 대한 만족을 내려놓고 적당히 다니기에는 괜찮은 직장이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는 변수를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좀 더 정확을 기한다면 소규모 사업장에 해당하겠지만. 그래도 대표는 어디선가 투자처를 찾아왔고 스타트업이라면 겪기 마련이라는 보릿고개를 겪지 않아도 됐다. 월급이 밀린 적도 없었다. 문제는 모멘텀도 없었다는 거다. 회사를 다닌 지 일 년 정도 됐을까.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이런저런 궁여지책을 내놓는 회의 가운데서 앞으로도 성장은 없겠다는 불길한 확신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이직은 나에게 마치 못다한 숙제처럼 다가왔다. 이직을 통해 직업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기는 친구들을 보고 난 뒤에는 그런 마음이 더 커졌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더 나은 처우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듯 보였다. 부러웠다. 그럼에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한 건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서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건 많은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지쳤다. 퇴근하고 나서 곧바로 집 근처 카페에 들어가 경력 기술서와 지원서를 썼지만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내겠노라 마음먹고 있던 기업도 기한에 다다라서야 겨우 원서를 제출하곤 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제대로 이직을 하려면 결국 퇴사를 하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나봐, 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직장에 대한 자괴감은 이직 시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서 겁이 났다. 내가 여기를 나와서 다른 곳에 갈 수 있을까? 이런 물경력을 어디에 내밀지? 같은 생각을 늘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직에 대한 갈망(?)과 현 상황에 대한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악순환하면서 불편한 허리띠처럼 늘 나를 졸라맸던 셈이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됐다. 내가 달라진 것도 회사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 라고 써도 무방할 것 같다. 사람인을 통해 지원한 이력서가 운 좋게 면접으로 이어졌고 당장 내일 모레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에 부랴부랴 연차를 쓰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직 시도가 면접으로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양복까지 갖춰 입고 덜덜 떨면서 신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채로 면접을 치뤘다. 다음 날 언제 나올 수 있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만일 이번 이직에 만족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머뭇거리게 된다.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더 괜찮은 처우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됐다.(이건 다음 번 글에서 좀 더 풀어쓰고 싶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만족한 건 아니지만. 이제 갓 한 달이 지났으니 새 직장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건 조금 불공평한 처사 같다. 일단 탈출은 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자.

이직에는 쟁취형 이직과 탈주형 이직, 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애매하게도 나는 그 어딘가로 향하고 말았고 오늘도 헤매고 있다. 그럼에도 이직의 경험으로 얻은 게 있다면 내가 어떤 조직에 있었던 간에 안락했을지도 모를 그곳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날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마다의 불행이 더 나은 곳으로 스스로를 밀어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Credit

글 | 마감도비
사진 | 마감도비
발행일 | 2020년 7월 29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3호 : 퇴사와 이직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3호 : 퇴사와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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