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자의 슬픔
요즘 부쩍 ‘일잘러 꿀팁’, ‘회사 막내 생존 가이드’, ‘순탄한 직장 생활 적응’, ‘온라인 사수’와 같은 온라인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테다.
일잘러 트렌드야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요즘은 광고 문구를 가만히 보다 보면 이게 해소되지 않은 배움의 욕구를 타깃한 거라기보다는 생존의 호소에 내미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온라인 사수가 필요하며, 왜 업무 노하우를 회사 밖에서 배워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회사 적응과 업무 숙달에 필요한 인프라가 회사 안에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신입 대신 경력직을 뽑는다는 수준을 넘어서 회사에서 사람을 키운다는 개념이 희박해진 거 같다. 자리에 앉으면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어쩌다 앉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거나.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말장난은 좀 우습다. 차장한테 고전문학 강독해달라고 한 것도, 부장한테 논문 리뷰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나. 합당한 시간과 시행착오 없이 무언가를 익힌다는 게 가능키는 한가.
지금 자신이 속한 산업·직군·조직에서 내가 맡은 역할과 문법을 알려달라는 것인데 그러한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는 회사가 너무 많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제 밑에 후배들도 많이 들어왔겠네요?”라고 물었을 때 “다 못 버티고 나갔어. 아니, 유능할수록 더 빨리 나갔어”라고 말하려다 맥주만 들이켰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강한 사람들이 만드는 강한 사회. 노력하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Credit
글 | 마감도비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2년 2월 16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78호 : 👻사수는 어디에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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