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레벨업

아카이브 2021년 3월 10일

웹소설 기반의 웹툰 <나혼자만 레벨업>이 인기다.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라는 직업이 자리 잡은 세상에서 최약체였던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남들과는 다른 시스템 속에서 혼자 레벨업을 하며 끊임없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RPG 게임 시스템을 세계관으로 하는 게임 판타지물은 낯설지 않지만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혼자’, ‘레벨업’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천한 경험과 능력으로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점차 주변의 인정을 받아간다는 점이 독자로 하여금 강한 감정이입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재미있는 점은 레벨업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고, 매일매일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웹툰에 너무 몰입을 해서일까. 아이패드를 끄고 자리에 누워서도 망상에 빠지게 된다. 직장에서도 ‘나혼자 레벨업’이 될까 하고.

밀레니얼(이라는 단어도 Z세대가 등장하면서 금세 낡은 감성을 지니게 된 것이 원통하지만) 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성장’을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직장인을 타깃으로 하는 온라인 콘텐츠와 광고에서 성장, 일잘알 등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일은 일일뿐이라고, 너무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같은 풀칠 레터 멤버들만 봐도 어떻게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어떻게 업무 환경을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니어 직장인들의 ‘성장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욕구가 너무 커지면 가끔은 괴롭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이 한심해지고 남들과 비교하면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이직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 업계 얘기를 들어도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렇게 무력감과 조바심과 불안감이 발목을 잡게 되면 성장 욕구는 더 이상 성장통이 아닌 만성 질환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성장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나혼자 레벨업을 보면서 나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나만의 시스템이 있고, 나만의 상태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성장에 대한 정의를 조금 다르게 내리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성장도 있다고.

그 뒤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됐다. 자괴감을 가지기 보다는 과정으로 그 자체로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독려하게 됐다. 경력직 또는 몇 년차라는 족쇄로 스스로를 얽매이기 보다는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나를 지키면서 일에서의 성취를 얻어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일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기획안을 올리고, 전화 통화로 의견을 조율하고, 쌓이는 메일함을 비워내고, 이 모든 작고 번거로운 일들마저도 나에게는 ‘나혼자 레벨업’으로 가는 크고 작은 퀘스트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혼자 레벨업을 하고 있다. 나혼자, 라기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또는 나만의 속도로 라는 수식어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Credit

글 | 마감도비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3월 10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32호 : 나혼자 레벨업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32호 : 나혼자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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