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소비
요즘 나에게 취미라고는 소비가 전부다. 누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점찍어둔 제품을 사기 전 유튜브에서 해당 제품의 리뷰를 찾아보는 시간과 장바구니에 담긴 제품을 사기 전 적용 가능한 쿠폰과 제휴 혜택을 찾아보는 시간이라고 답할 것 같다.
특히, 퇴근 후에는 구천을 떠도는 혼령처럼 침대에 누워 ‘쿠팡’, ‘오늘의 집’, ‘무신사’, ‘당근마켓’과 같은 앱을 끊임없이 떠돈다. 그리고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올해의 어워드로 꼽힌 화장품, 기발한 생활용품, 가성비 좋은 IT제품을 끊임없이 장바구니에 올리고 가격을 서로 견줘보고 힘껏 결제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뿌듯해 한다. 일종의 씻김굿인 셈이다.
이제는 소비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설 필요도 없지만 그마저도 집밖으로 나를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다이소와 올리브영이 유일하다.
결제 내역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내 안에서 보상심리가 열심히 스스로를 변호하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했는데. 야식 정도는(또는 이렇게 유용한 생필품 정도는) 결제해도 괜찮은 거 아냐? 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즉흥적인 소비 성향이 더욱 가속화됐다. 쿠팡와우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 당장 갖고 싶은 (작고 소중한) 제품을 배송비도 들이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면 당장 손에 쥘 수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소비만큼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물론 돈을 갚는 건 별개다.)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체력과 집중력은 줄어가는데. 짜증과 허탈감을 풀 수 있는 이만한 해결 방법이 없다.
코로나19가 취미 생활을 어렵게 만든 것도 한 몫 했다. 운동도, 모임도, 전시나 영화 관람도 안 되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 복싱이나 클라이밍과 같이 몸을 쓰는 운동을 좋아하고 카페나 서점을 찾아다니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들기 전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느긋함, 안락함과 같은 하루의 결이거나 두근거림, 짜릿함과 같은 삶의 태도인데, 내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결국은 내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건데 손쉬운 소비로 내 삶이 정말 나아질까, 일이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오늘의 집에서 예쁜 인테리어 소품을 사면 내 하루가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그 날 이후로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건 손쉬운 방법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지만 여전히 고민으로 불면의 밤을 건너고 있다. 내 하루를 바꿀 수 있는 게 더 나은 제품이 아니라 더 나은 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Credit
글 | 마감도비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0년 12월 30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24호 : 직장인의 소비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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