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도 근무입니다

아카이브 2020년 9월 2일

느닷없이 사내 게시판에 공지가 올라왔다. 8월 31일까지 전 직원 재택근무. ‘오, 대기업, 공공기관만 한다는 재택근무를 나도?’라는 생각도 잠시, 재택근무도 재택 ‘근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우선, 내가 첫날부터 체감한 건 일과 생활의 경계선이 모호해진다는 점이었다. 별도의 출퇴근이 없고, 업무 공간이 곧 생활공간이다 보니 분명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휴대폰 알람이 오면 마음이 불편했다. 업무 지시일까 봐. (왠지 모르게 재택 근무 이후 퇴근 시간을 넘긴 업무 지시가 더 많아진 것 같은 건 단순히 내 기분탓일까?)

재택근무를 하면 몸이 훨씬 더 편하겠지? 같은 기대에도 조금씩 균열이 갔다. 늦은 저녁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업무를 모두 마치자 귀신같이 피로감이 찾아왔다. 퇴근길 지하철 또는 버스 안에서 느끼게 되는 피로감, 온몸이 천근처럼 무거운 바로 그 감각이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집중과 긴장,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는 피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관리자의 감시와 견제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하는 입장에서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딴 짓을 하겠느냐고 토로하겠지만 이게 관리자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조금 심하게는 부당한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 하필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연락을 받지 못한다거나 내부망을 통한 보고가 늦어질 경우 현재의 위치나 작업 상태에 대해 문책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누군가로부터 “자냐?”라는 말도 들어봤다. 상대의 수면 상태를 묻는 질문을 구 연인에게서 듣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케이스가 있을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여기까지 쓰자 재택근무가 최악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장점도 분명하다. 솔직히 나는 재택근무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빨리 종식됐으면 좋겠고.(일은 하지 않고 월급은 받고 싶은 심정과 비슷하달까.)

역시나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길에서 돈과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흐린 눈으로 대중교통에 몸을 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직장인에게 마치 축복과도 같았다.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전날 사놓은 커피 한잔을 마시며 노트북 앞에 앉으면 그날 아침 업무 준비는 모두 끝.(물론 머릿속은 그렇지 않다.)

그 다음으로 좋은 점은 사회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집에 혼자 있다 보니 행동거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다. 가령,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의 표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예를 들어, “내가?” 라던가 “그게 되겠냐?”라던가. 심지어 욕도 할 수 있다.(만세!)

자극적인 예시를 들긴 했지만 회사에서, 사무실에서 다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가면을 쓰기 위해 우리가 소모하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앞서 풀칠 에세이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점심시간의 스몰토크를 위해 아이디어와 제스처를 짜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8월과 함께 내 재택근무 기간은 끝이 났고 이 글을 읽는 시점이면 내 재택근무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는 풀칠러들의 일상에 더 스며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마스크처럼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이 겪었던, 혹은 바라는 재택근무는 어떤가요?


Credit

글 | 마감도비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0년 9월 2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8호 : 재택근무도 근무입니다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8호 : 재택근무도 근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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