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한 거짓말
아매오: 이미 뻥치고 시작했네요. ‘솔직하게’라…과연 저희는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요? 일단 노력해 보겠습니다. 흠흠.
“일했던 기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날을 꼽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고요? 제 경험상 이것은 진실입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걱정(=화내지)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그것들이 끝까지 거짓말로 남았다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일단 일의 구조에 대해 먼저 떠들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기초로 합니다. 도메인이 어떻고, 조직문화가 저떻고, 직무가 이렇고, 경력이 저렇고…그런 차이점들을 소거해 나가면서 극한까지 단순화시키면 결국 ‘목표한 수준의 결과물을 기한에 맞게 내놓는 것’이라는 구조만 남습니다.
즉 일을 시작할 때는 두 가지를 봐야 합니다.
1. 목표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
2. 기한 내에 납품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목표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걸릴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할 수 없다며 배짱부릴 수는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 제시합니다(당연히 그냥 내려꽂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만). 물론 경력이 충분히 쌓였다면 그동안 축적된 경험치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이 정도의 경력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일의 결과물을 약속하는 시점과 그것을 평가받는 시점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경력이 부족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그걸 거짓말이 아니게 만들기 위해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력이라 하면…투입 시간을 늘리는 것부터 떠오르네요. “앗, 넵. 이제 마무리 중입니다! 내일 오전까지 보내드릴게요!”라고 한 뒤 밤을 지새웠던 몇몇 날이 생각납니다(조금 경력이 쌓인 뒤에는 ‘일정 조정 협의’라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죠).
경력이 쌓인다고 거짓말할 상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같긴 합니다. 그때는 또 그때의 상황이 있는 법이라고 할까요. 새해가 되면 쏟아지는 기업들의 신년 목표는 얼마나 지켜졌나요? 정치인들이 선거 때 약속한 공약들은 얼마나 달성됐나요? 어쩌면 이 세상은 크고 작은 거짓말을 동력 삼아 굴러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타인이 내뱉은 거짓말에 맞서싸우며 날마다 버티고 있다는 점이 위안 아닌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파주 님은 불과 2주 전 보낸 편지에서 자기 일을 “클라이언트를 홀리는 거”라고 요약했습니다. 어쩐지 이 주제로는 할 말이 가장 많을 것 같기도 한데요. 그는 과연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요? 어디 한번 들어볼까요?(팔짱을 끼며)
파주: 과거의 제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실언을 내뱉은 것일까요. 편지를 보내던 당시, 아마 거듭된 야근으로 인해 뇌가 뜨거워져 과부하가 걸린 상태가 아니었을지… 비겁한 변명을 해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벌이는 일에 대해 뻥카를 쳐야만 하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제발…) 특히나 기대효과 같은 것을 두고 마치 혁명이 일어날 것만 같은 수사적 표현을 나불대기도 하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해당 캠페인을 통해 타깃들에게 신제품을 각인’시킨다거나 ‘대중적 인지도 확보 및 브랜드 호감도 제고를 통한 실제 제품 구매율 상승’을 꾀한다거나… 방금 떠오른 대로만 키보드를 두들겼을 뿐인데 뻥이 술술 나오네요.
아주 잠깐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이내 합리화했습니다. 내가 하는 건 ‘뻥’이지, 거짓말은 아니라고요. (둘이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거짓은 없는 걸 있다고, 못할 걸 한다고 남을 속이는 것이지만요. 뻥은 허풍을 속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하여 믿음이 안 생길 뿐이지 거짓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거죠. 참, 구구절절 변명하려니 허튼 말이 길어지는군요.
여하튼 제가 지르는 뻥은 ‘그냥 한 게 아닌 척’한다는 겁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어떤 콘텐츠를 기획할 때 대부분은 기획의도가 있고, 그 의도를 잘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문서를 만드는데요. 신제품의 특정 기능이 부각되는 앵글로 촬영을 한다거나 여름 시즌 이슈를 활용한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요. 하는 일의 9할 5푼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그냥’이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기획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째서인지 꼭 이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더 고민해봤자 좋은 게 나올 것 같지 않을 거란 직감도 들고요. 결국 ‘그냥’이라는 이유로 선택을 하곤 합니다. 마음이 동하는 걸 어떻게 막겠어요.
이후에 상사든 클라이언트는 누군가가 ‘혹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라고 물어오면, 그제서야 이유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가끔은 얄팍한 말주변 때문에 설명이 충분치 못할 때도 있지만요. 세상에는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무수히 많으니까요.
당장 오늘도 그냥이라는 직감을 믿고 저지른 일도 어찌저찌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발 뻗고 잘 잠들 것 같네요. 모든 일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백 님?
야백: 사실 그건 뻥이었어.
이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한 둘이 아니군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뻥을 쳐대면서 살고 있는 건지. 가장 최근에 한 거짓말은 이러했습니다. "예 좋습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완전히 딴판이었죠. "아뇨. 싫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동의도 안되고,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언사를 내뱉어야 하는 경험, 회사에선 너무 흔해서 이걸 거짓말이라고 불러야 할지 조차 헷갈릴 지경입니다.(우리에겐 '사회생활'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도 있죠. 거짓말을 숨 쉬듯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데 참 요긴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발설할 수 없는 건 어째서일까요?
저는 회사마다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거짓말이 시작되고 나면 그 뒤로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거죠. 이 거짓말의 퍼레이드에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력과 이해관계가 섞여 들게 되면 거짓말은 어느새 완결성을 가진 하나의 세계관으로 굳어져버립니다. 모두가 약간씩은 거짓을 말하는 게 규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거짓말하길 거부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고요.
어쩌면 이 세상은 거짓말로 직조된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태엽장치가 아닐까요. 진실이란 톱니바퀴들 사이로 비추는 빛 같은 거고요. 빛이라고 해서 유익한 무언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톱니바퀴는 식물이랑 달라서 빛이 필요 없잖아요? 톱니바퀴들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만 굴러가고, 어쩌면 빛이 들고 있다는 사실이 태엽장치의 구조적 결함의 증거가 될 수도 있죠. 일이 한창 바쁠 때는 빛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여기에 빛은 왜 드는거야?"
다시 돌아와서, 회사 내에서 최초의 거짓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일을 해보기로 합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죠. 운 좋게도 그 아이디어는 뭔가 성공처럼 보이는 결과를 거둡니다. '성공처럼 보이는',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성공을 했는지, 아니면 실패를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지표 중 하나는 아마 상승곡선을 그렸을 겁니다. 회원가입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러면 그 회사에서 이 프로젝트는 성공으로 '해석'됩니다. 이 해석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카리스마, 평소 태도, 차지하고 있는 권력, 이해관계 같은 변수들도 영향을 끼치죠. 그리고 마침내 성공으로 자리매김한 것들은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동상 같아서, 이 반영구적 집권을 끝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의도에 의도가 더 해지다 보면, 그 '성공'은 신입사원 교육에 쓰이기도 하고, 업계 여기저기에 공유될 수도 있고, 강의로 만들어져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 새로 합류한 데이터분석가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저기요... 그 프로젝트 통해서 실제로 결제한 사람은 아무도 없던데, 왜 그게 그렇게 대단한 성공인가요?"
오호 통재라. 거짓의 세계에 한줄기 빛 같은 질문이라니. 하지만 이때는 이미 온 회사의 구성원들이 그 거짓에 지분을 약간씩은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동상을 철거하기보단 동상 밑에 각주를 다는 쪽이 조금 더 비용이 적게 들죠. '그때는 그게 맞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놓인 맥락에서 정의한 성공은 그것이었습니다.' 잠깐의 소요가 가라앉은 다음, 이 성공신화는 약간의 진실이 첨가된 덕분에 더 고색창연해지고 단단해지죠.
이런 일들은 너무나 흔하게 일어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누군가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좋은 의도가 거짓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팀원이 더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 팀원의 성과를 유의미하게 해석해서 보고하는 팀장의 마음은 선하지 않은가요? "이번에 A덕분에 전환율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를 확인하는 검정을 해보면 그 차이는 우연이었을 수도 있죠. 검정 결과가 보고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팀장의 보고는 거짓일까요, 진실일까요? 팀원은 일을 잘한 걸까요? 못한 걸까요?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일까요?
매일매일 성실하게 거짓말에 복무하고 있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가끔은 이 사실이 통탄스럽기도 합니다. 거짓 위에 거짓이 쌓이다 보면 결국엔 모두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게, 진실은 딱 한 번만 훼손되어도 돌이킬 수 없는 너무나 취약한 얇은 막이라는 게 짜증스러울 때가 있어요. 어째서 거짓된 태엽장치 속에 들어가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우리의 존재 조건인 건지! 누군가 진실을 위해 투쟁할 배짱이 있다면, 그 배짱은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진실이 아직 훼손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발 딛고 있는 생활을 버린다. 두 번째. 거짓으로 세워진 바벨탑 어느 구석 벽에다가 낙서를 한다. '그건 사실 뻥이었어.'
월급 등의 사정으로, 모순인 줄을 알면서도 후자를 택해야만 하는 모든 풀칠러 분들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우정의 눈인사를 보냅니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라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순을 우리끼리라도 품어줍시다
추신 : 이번 편지를 쓰면서 뻥이라는 단어를 한번 소리 내서 발음해 봤습니다. 펑키한 된소리가 속 시원하면서도, 복압이 올라간 탓인지 뒷맛은 약간 먹먹한 것 같습니다. 모두들 한 번 외쳐보세요. 뻥!
다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으신가요?
풀칠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매주 수요일 자정, 평일의 반환점에
새로운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Copyright ©풀칠 All Rights Reserved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