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하는 마음도 능력
고속버스를 탈 때면 묘한 팀 스피릿을 느낀다. 기차나 지하철, 일반 시내버스는 다른 승객이 어디에서 탔는지 혹은 어디에서 내릴지 모른다. 반면 고속버스는 모든 승객이 출발지와 도착지를 공유한다.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은근한 내적 친밀감을 선사한다. 우리를 ‘우리'로 묶는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현재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고속버스를 탄 이상 유일한 목적은 예정된 시간 안에 예정된 공간에 도착하는 것이니까.
고속버스 팀 스피릿. 요새 유행하는 '느슨한 연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개개인의 모습은 출발지(현재)는 물론 도착지(미래)에서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동하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나 자세, 마음가짐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들 자신이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무사히 건너왔다는 사실에 대해 서로 증인이 되어줄 수 있다. 내가 했고, 했다는 걸 쟤가 알고, 쟤가 안다는 걸 내가 안다. 쟤도 그렇다. 이건 흩어진 개인들에게 생각보다 큰 힘과 위로를 준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나는 ‘모임’을 만드는 기획자다. 만들고 싶은(만들어야 하는) 모임의 카테고리를 정한 다음 해당 분야에서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컨택한다. 또는 평소 관심 갖고 있던 사람에게 모임 진행을 제안하기도 한다. 일의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료 같다. 모임 하나가 고속버스 한 대인 셈이다. 기획자와 진행자가 나란히 앉아 운전을 하고 열댓 명의 참여자가 객석에 앉는다.
우리는 목표를 공유한다. 모임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마무리되는 것. 참여자의 만족감과 진행자의 효능감이 눈에 보일 때 기획자는 뿌듯하다. 한 시즌 더 하시죠.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어필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즌을 진행하는 순간부터 진짜 동료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다양한 팀워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장점이다.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인 분이 나와 첫 미팅을 마치고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인데 능력자님을 만났다!”라고 써줬다. 개인적으로 최근 ‘내게 닿은 좋은 말’ 중 최고라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꺼내 먹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격려하는 마음’이야말로 훌륭한 팀이 갖춰야 할 필수역량이 아닌가 생각했다. 일은 결국 혼자 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 한걸음을 내딛게 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힘’이 아니라 ‘마음’이다.
힘이 액션이라면 마음은 리액션이다. 사려 깊은 리액션이 이끌어내는 퍼포먼스는 측정할 수 없지만 그 어떤 액션보다도 커다랗다. 아매오 님의 글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용기를 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콕 집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내 글에 공감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았답니다. 피터 드러커 아저씨는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런 말들을 어떻게 측정하나. 난 분명 이것들에 기대 무언가를 해왔는데.
격려하는 마음은 능력일까. 그렇다고 본다. 당연히 덮어놓고 좋은 소리만 하자는 게 아니다. 리액션의 기준을 조금만 더 낮추고 최선의 결과로 가는 길을 같이 찾아보자는 거다. 개개인의 역량은 그 다음에 따져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깔아 뭉개고 몰아치는 거 안 하고 싶다. 보기도 싫다. “사람이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변명 뒤에 숨고 싶지 않다. 숨는 사람도 싫다. 못 나가는 패배자의 푸념 같아 보여도, 그냥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네.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4월 28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39호 :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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