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오피스에서 일해봤더니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와 걷곤 했다. 당시 거주지는 신촌. 신촌 하면 대학교지. 연대에서 시작해 홍대를 찍고 합정, 상수를 돌아 서강대를 거쳐 이대를 지나 연대에 도착하면 약 2시간이 걸렸다(동네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나는 그 코스를 꽤 좋아했는데, 걷는 시간과 거리에 비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도 걸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만 이어지던 고향을 떠올리면 그건 산책보다는 롤러코스터에 가까웠다. 제각기 다른 색을 품은 사람들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그저 맞고 있기만 해도 좋았다.
정세랑 작가는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에 방문했던 경험에 대해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그곳엔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경계석이 있는데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발밑의 나라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공동체 중 하나인 국가라는 개념이 겨우 한 걸음으로 좌우되는 경험은 어떨까. 물론 거기에는 못미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신촌을 누비며 혼자 자주 벅차올랐던 나는 정세랑 작가가 느꼈을 흥분이 무엇인지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회사가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처음 입주할 때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여러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였다(이를테면 맥주 제공이라든지...). 물론 쾌적한 시설이 나로 하여금 자주 흡족한 미소를 짓게 만들긴 했으나 공유 오피스의 본래 장점을 100% 누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지우기 힘들었다. 최근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실시되면서 그것들이 하나씩 돌아오는 중인데(이를테면 맥주 제공이라든지!!!), 특히 많이 돌아온 게 '사람'이다. 비었던 사무실에 새로운 팀이 들어오고 재택 근무러들이 돌아온 것이다. 공용 공간인 라운지에도 부쩍 활기가 돈다.
저긴 개발자가 엄청 많네요. 무슨 서비스를 하는 걸까요? 여긴 다들 태블릿 붙잡고 그림 그리던데. 문 앞에 세워둔 캐릭터가 대표 상품인가? 옆 사무실은 엄청 웃고 떠드는 거보니 분위기가 되게 좋나봐요. 라운지에는 팀 회의를 하거나 혼자 집중 근로하는 사람이 보였고 가볍게 티타임을 갖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나는 주로 도시락을 까먹으며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러 사람이 바람처럼 불어오고 또 불어 나가는 열린 공간. 몇 년 전 신촌을 거닐며 느꼈던 에너지, 정세랑 작가가 드라이란덴푼트에서 느꼈을 흥분과 비슷한 무엇이 여기에도 있었다.
'완전히 독립적인 팀들'은 단지 물리적으로 공존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양성에 노출된 환경은 팀을 구성하는 개개인에게 풍부한 역동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역동성은 욕망을 생산하는 연료로 사용되고 때론 그것이 결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욕망은 어떻게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개인이든 팀이든 완전히 다른 성장 서사를 쓰도록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실 더 많은 욕망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것을 공유 오피스가 가능하게 한다. 물론 즉각적인 충족을 요구하는 욕망에 잡아먹히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겠지만.
공유 오피스는 좋은 선택지다(써놓고 보니 영업 같은데, 저는 관계자가 아닙니다...). 팀 단위의 소규모 회사라면, 반드시 독립적인 사무실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창의성을 요하는 일이라면, 약간(?)의 비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직원 입장에서 하는 얘기다. 사무실 유지 비용을 비롯해 따져볼 것이 많은 경영자 입장에서는 또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대표도 아니고, 풀칠러 분들 중에도 대표...님은 안 계실...테니까...? 흠흠. 저는 이만 맥주나 한 잔 때리러 가야겠습니다. 아무리 회사라도 맥주 맛을 떨어뜨리지는 않더라고요. 호호호.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12월 1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68호 : 공유 오피스에서 일해봤더니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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