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기 싫은가?
야백: 그러게요. 명색이 직장인인데 저는 왜 이렇게 일하기가 싫을까요. 돈도 없고 달리 할 것도 없는데. 이거야말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뭔가 하기 싫은 이유는 보통 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나한테 도움이 안 되거나,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뭔가 다른 하고 싶은 게 있던가.
한번 하나씩 따져볼까요. 일단 일은 제게 도움이 됩니다. 덕분에 먹고살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돈을 버는 덕분에 커피도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고 월세도 내고 저금도 합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저를 칼 들고 협박하지 않았어요. 제 손으로 이력서를 내고, 제 발로 걸어가 면접 보고 들어온 회사입니다. 흠. 그럼 저는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걸까요?
만약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거라면 저는 하루빨리 회사를 그만둬야 합니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에요.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불평하는 건 농구장에 가서 농구 경기를 뛰면서 나는 사실 축구를 하고 싶다고 툴툴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프로 농구선수가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당장 팀에서 방출되어야 마땅하겠죠.
하지만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낯선 이들의 체취를 맡고 있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농구를 하기 싫어하는 농구선수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어 집니다.
어쩌면-그 농구선수는, 농구를 하지 않으면 애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도 사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이렇게 매일 경기만 뛰다간 남은 생에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횟수가 100번이 안될 것이라는 슬픈 사실을 문득 자각하게 되어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면 농구가 엄청나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농구 대신 배드민턴을 골랐을 때 생길 불행을 감당할 여력이 없던 거라면? 그렇다면 농구선수가 불만을 가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사실 이미 어느 정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래요. 저도 압니다. 진짜 원인은 비겁이라는 걸. 원하는 삶은 따로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걸만큼 원하지는 않는 비겁함. 그런데 이 비겁함을 선택했을 때 세상이 의외로 괜찮은 결과를 돌려주는 건 도대체 왜일까요?
비겁 위에 쌓아 올린 제법 괜찮은 일상과, 점점 복잡해지는 관계와, 커지는 기대. 찔끔씩이나마 오르는 연봉. 어느새 쌓여가는 연차까지. 어떤 날에는 이 모든 것들이 마치 혈관 속에 쌓이는 콜레스테롤처럼 느껴지죠. 100% 강요된 것도 아니고 100% 선택한 것도 아닌, 얼떨결에 열심히 사는 삶. '일하기 싫다'는 기분은 이런 삶을 선택한 이상 감당해야만 하는 휴유증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마음이 제게 보내는 구조 신호이거나. ‘넌 지금 인생을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고 있어!’
하지만 저는 이제 충동적 퇴사를 감행해왔던 20대의 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는 노하우도 마련해두고 있죠. 마음의 소리란 보통 주변이 조용할 때 들리기 마련이라서요. 이걸 무시하고 싶을 땐 좀 시끄러운 게 도움이 되더군요. 업무용 메신저를 켜고 멘션 탭을 클릭. 스레드 탭을 클릭. 반응 탭을 클릭.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소음 속으로 풍덩.
그렇게 하루 종일 온갖 문의와 논의와 어젠다들과 입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는 산소가 아니라 데이터로 호흡하고, 세상은 회사로 쪼그라듭니다. 이 시끄러운 세계의 충실한 일원이 되어 소음에 소음을 보태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문제 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여요.
참, 그래서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뭐냐고요? 그건 바로….
(야백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아, 시끄러워. 저기 조용한 곳에 가서 아매오의 얘기나 들어보시죠.)

아매오: “‘왜 일하기 싫은지’를 몰라?”
이번엔 ‘왜 일하기 싫은가’라는 주제로 편지를 쓸 예정이라는 말에 조수석에 앉은 애인은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놀란 건 오히려 제 쪽입니다. 그걸 알고 있단 말야?
“일하기 시작한 뒤로 항상 ‘개학 전 날 밤에 밀린 방학숙제 하는 초등학생’처럼 살아. 그때는 차일피일 미뤘던 내 잘못이기라도 하지.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는데 매일 새로운 게 생겨. 심지어 최대한 빨리 해줘야 한대. 거의 모든 일들이 그래. 이게 반복되니 지긋지긋하지. 개별 업무가 싫은 게 아냐.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였습니다.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사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애인의 직장은 ‘월-금, 9-6’이라는 전형적 업무 패턴에서 벗어난 곳입니다. 일하고 쉬는 일정이 불규칙하죠. 게다가 본인은 쉬어도 또 다른 누군가는 출근해 일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연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한 오프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일할 때는 물론 쉴 때도 쫓기는 것이죠. 실제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 길에 이뤄졌던 이 대화 중간에도 애인의 스마트폰은 업무 메신저와 카카오톡과 전화 등 여러 루트로 알림을 띄웠습니다.
“비슷하지 않아? 여름 휴가 가면서 노트북을 챙기는 이유가 뭐야? 여기서도 일하고 싶어서? 아니잖아. 마지못해 들고 온 거 아냐? 딱 쫓기는 마음으로 밀린 숙제 하는 꼴인데.”
애인이 차마 스마트폰 알림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저 또한 기어코 노트북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하얀 모래로 뒤덮인 해수욕장과 드넓은 바다, 그곳에서 뜨겁게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내려다 보이는 호텔 방 한 구석에 앉아 업무를 쳐내려고? 아닙니다. 아니, 맞습니다. 적어도 그걸 챙기는 시점의 제 마음은 그랬습니다. 미리 해두면 좋을 것들과 갑자기 튀어나올 것들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준비를 한 셈이죠.
물론 업무는커녕 파우치에서 노트북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이번 휴가의 테마는 호캉스. 저녁 2끼를 제외하면 2박 3일 간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딱히 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먹으면 노트북을 펼치고 1~2시간 쯤 할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죠. 하다못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하기 싫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기’ 외에는 무엇도 하기 싫었습니다. 왜일까요?
‘아무것도 안하기’를 위한 때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동어반복이지만 이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습니다. 벌써 한 달 전에 잡아놓은 휴가였기 때문에 아예 안 가면 모를까, 이제 와서 해당 시간과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침대에서 책상까지 단 두 걸음이면 충분했지만 도무지 그 자리로 발이 가진 않았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본능이나 충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예측가능성과 계획에 가깝습니다.
평일 오후 반차를 낸 직장인의 심정을 얘기해 볼까요. 대다수는 ‘와. 평일 이 시간에 회사 밖에 있다니.’라며 조금은 감격할 겁니다. 여러분 중 이런 생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저에게 돌을…아닙니다. 어쨌든 이는 ‘일할 때와 아닌 때, 일할 장소와 아닌 장소’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는 얘기입니다. 합의가 깨진다면(그리고 이런 경우는 대다수 나보다는 상대에 원인이 있죠) 이러나 저러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왜 일하기 싫은가. 합의와 다르게 일할 때가 아닌 때에 또는 일할 장소가 아닌 장소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잘하는지 혹은 좋아하는지 여부와는 상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꼭 일에 있어서 그렇기만 한 건 아니네요. ‘나 자신’을 포함한 ‘나의 것’이 ‘나 아닌 사람이나 상황’에 종속된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불만을 표출할 겁니다. 각자 조금씩 다르겠지만 삶의 주도권을 0으로 낮추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일장 연설에 애인은 또 다시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가끔은 일할 때와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일하기 싫어지는 경우도 있잖아. 상사가 자리 비운 날을 가리키는 단어가 괜히 있겠어? 금요일 오후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처리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곧바로 반증돼버렸네요. 그치만 이게 무슨무슨 대학교의 연구 결과는 아니니까요. 다양한 경우가 있는 법이죠. 에헴. 또 다른 경우는 어떤지 들어봐야겠네요. 파주 님? 이야기 준비됐나요? 네? 지금은 그럴 때와 장소가 아니라고요?

파주: 마침 ‘아휴 뒤지게 일하기 싫네’를 팀장님 앞에서 육성으로 내뱉어버린 날이네요. 로또에 당첨됐다거나 퇴사를 결심했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냥 뒤에 계신지 몰랐던 겁니다. 때마침 지나던 경의선 숲길을 가득 채운 매미 소리가 너무 컸어요. 정말로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일하기 싫다’는 말을 마침표처럼 내뱉는 저이지만, 막상 ‘왜 일하기 싫은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니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에 가고, 그 회사를 나가고 싶다면 다른 회사에 들어가고… 그걸 관성적으로 반복했어요. 지나고 보니 저는 싫다고 말하던 코스를 큰 저항 없이 걸어왔던 것 같네요. 일하기 싫은 건 당연하고, 어른이라면 모름지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왜 일하기 싫은가?’를 되짚어보겠습니다. 지난 호에 말했듯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업은 ‘우리 회사’가 먹고살기 위해서 ‘남의 회사’의 일을 대신해 주어야 하는데요. 대행하는 일이라는 건 주도권이 대부분은 타인에게 있는 법입니다. 집행할 예산부터 캠페인에 녹일 메시지, 세세하게는 콘텐츠의 제작 방향까지도요. 그러다 보니 합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이지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 일을 패고 싶단 생각마저 듭니다.
단순히 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 짜증을 내는 게 아닙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구려지는 사태에 화가 솟는 것이죠. 우리의 취향이 다르다고 순화하기엔 많은 것들이 틀어져 있습니다. 기껏 바꾸었다는 글에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남발하거나, 영상 속 폰트를 다섯 번씩이나 교체하며 에너지를 쓰는 바람에 정작 해야 할 일이 무한히 연기됐죠. 과연 이 무례한 상대에게 분노하지 않고서 버틸 재간이 있을까요?
아, 제가 너무 급발진하고 말았네요. 일을 하기 싫은 이유를 대라면 한도 끝도 없겠죠. 늦잠 자고 싶어서, 출근이 귀찮아서, 남들 일할 때 마시는 낮술이 좋아서, 은행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서, 돈가스 맛집도 웨이팅 없이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일이 싫은 이유를 단 하나 꼽자면 ‘내가 하는 일이 쓸모없어지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직전에 분노했던 원인도 바로 그 지점이고요.
쓰다 보니 깨닫게 되었는데요. 일이 구린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노력이 무용해지는 순간에 분노한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작동하는 감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오늘만 해도 그렇네요. 오전까진 차일피일 대답을 미루며 엉뚱한 겐세이만 반복하는 이를 향해 참지 못할 정도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아니, 돈만 주면 다야?!(다긴 하죠) 같은 프로젝트로 고생하는 팀원들과 하소연하며 간신히 이너피스를 했더랬죠.
마침 오후엔 다른 프로젝트에서 오래도록 기다리던 성과가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조회수가 40만, 50만, 55만…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0.1만씩 올라가는 수치를 보면서 흡사 코인이 급등하는 듯한 도파민을 만끽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실제로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프로젝트를 하며 같이 고민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콘텐츠 하나 터뜨린 게 뭐 대수냐 싶지만, 뭐 이런 날 수상 소감 내뱉는 거 아니겠습니까? 응원해준 워킹그룹원, 함께 고생한 영상팀, 인내한 클라이언트에게 감사의 말씀은 전합니다. 피스!
쓰면 쓸수록 일의 슬픔보단 기쁨에 대해 쓰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변명 한 줄 하겠습니다. 부모님과 전화를 하면 아주 가끔씩은 미안하단 말을 하시는데요. 풍족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일하느라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신파로 시작하는 레파토리입니다. 처음엔 그 말에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는데요. 요즘엔 그냥 ‘그렇다고 일을 안 하면 내가 뭘 하겠어?’라는 말로 화제를 돌립니다.
저도 제 자신을 잘 알거든요. 잠깐의 백수생활 동안 지켜본 저는… 일을 하지 않으면 팬더와 다름없는 생활을 할 게 뻔한 인간이라는걸요. 저 같은 게으른 인간이 현대문명인들 사이에 잘 섞여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한다, 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싫어도 어쩌겠어요. 먹고살려면 일해야죠. 풀칠러님도, 다들 불평불만하면서 성실하게 출근하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내일 출근길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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