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또는 예술하기

에세이 2021년 10월 13일

요즘엔 돈 생각뿐이다. 하루 종일 연봉이 올랐으면,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침에 눈을 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할 때도,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에도, 일과 일 사이 한 숨 돌리며 창밖을 볼 때도, 정적이 감도는 사무실에서 자판을 두드리다 문득 천장을 쳐다볼 때도. 퇴근길 백팩을 고쳐 메며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에도. 퇴근길 골목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찍을 때도, 밤늦게 혼자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잠을 청할 때도.

이렇게 돈, 돈 하더라도 희망이나 바람에 그칠 뿐이지 실제로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거나 재테크를 열심히 하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미국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친구들은 퇴근을 하고 밤이 되면 비로소 돈을 벌기 시작하는 거라던데. 나는 그런 일에 젬병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몹시 궁핍하다거나 무언가를 열렬히 사고 싶은 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살 수 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바꾸고 싶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고 싶고, 신형 아이패드 미니를 사고 싶고, 중고차라도 하나 있었으면 싶지만. 이 모든 것은 일이 힘들 때 유튜브와 쇼핑 앱을 뒤적이면서 잠시 행복감을 젖을 뿐, 돌아서면 잊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요컨대 나는 사실 ‘돈’이라는 실체보다는 ‘돈’으로 상징되는 어떤 가치를 갖고 싶은 걸 테다. 가령, 절대적으로 어느 만큼의 돈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적어도 남보다는 적게 벌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석에 부모님댁에 내려가 잔소리나 친구들 근황을 들을 때 드는 자괴감과 부러움에서 비롯된. “개는 요즘 잘 번대.” “걔는 얼마를 받는다더라. 차도 샀대.” 등등.

또 다른 한 편으론 연봉이 무럭무럭 자라나 내 실력을 숫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 하고 있는데, 이 만큼의 성과를 냈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냐? 하고. 이직 제안을 받아도 이직 그 자체에 대한 설렘이나 솔깃함보다도 시장에서 나에게 어느 만큼의 가격을 책정했을지 궁금증이 앞선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최대한의 돈을 벌고 싶다. 단순히 연봉을 높이고 싶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내가 아직 연봉 이외의 수입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크겠지만.) 길게 보면 결코 크지 않을 수 백 만원 차이의 숫자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근거가 될 거라는 생각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나 고생하는 건 맞지만 이만큼은 벌어. 그니까 나 조금만 더 해볼게. 부모님, 친구, 연인,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그런 점에서 직장인에게 돈벌이는 끊임없이 조율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만족할 만한 삶을 영위할 수준의 수입을 확보하는 것. 그게 내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다. 꼭 프리랜서만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직장인도 좋던 싫던 자기 일의 경제적 근거를 찾아야 함으로. 이를 테면 직장인의 예술가적 면모다.

매일 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곧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 그게 아니라면 내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있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일을 했을 때 나는 지금과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나 외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여러 기둥 등을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과 할 줄 아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누군가에겐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일 혹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좌표가 추가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이 벌고 싶어. 나는 이 일을 좋아해. 내가 적어도 이 만큼은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 매일 밤 내가 되새기는 자기 위안이자 자기 세뇌다. 정말이지,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긴 글렀지만. 적어도 풍요로운 마음만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Credit

글 | 마감도비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10월 13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61호 : 돈벌이 또는 예술하기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61호 : 돈벌이 또는 예술하기


다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으신가요?

풀칠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매주 수요일 자정, 평일의 반환점에
새로운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구독하기

Copyright ©풀칠 All Rights Reserved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