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한 사람은 없어요

에세이 2021년 6월 23일

우리 셋은 반 년씩 텀을 두고 차례로 퇴사한 '전 직장 동료'다. 마지막 순서였던 나의 퇴사 이후 또 반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각자 직장에서 퇴근한 뒤 옹기종기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겪었던 고충이나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실컷 떠들었다. 저마다 다른 경력을 쌓고 있었지만 모두 동의하는 결론 하나는 분명했다. 현재 직장이 자신과 꼭 맞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구관이 명관'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는 커리어 패스에 기어코 (미세하지만) 우상향곡선을 그려냈던 셈이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 네가 합격했으면 내가 퇴사 못 했지. 우하하하!"

A는 자신이 퇴사 소식을 알렸던 때 얘기를 꺼냈다. 당시 나는 몰래(?) 이직 면접을 보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A가 선수를 쳤다.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결과에 따라 A와 내가 동시에 퇴사할 수도 있다. 그럼 우리 팀에 남는 이는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입 하나. 물론 대단한 일꾼도 아닌 나 하나 없다고 회사가 멈춰서진 않겠지만 적어도 신입에겐 못할 짓 아닌가. 우선 재빨리 털어놨다. 나 여기 붙으면 갈 거고, 가게 되면 당장 다음주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당신이 상사니까 대책 마련을 부탁합니다… 주말 동안 '대체 가능성'에 골몰했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였다.

(1) 아매오 이직 성공 + A 퇴사
(2) 아매오 이직 성공 + A 잔류
(3) 아매오 이직 실패 + A 퇴사

내 입장에서는 (1)이 가장 찝찝하다. 우선 이직을 하려는 이유 자체가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같은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에 약간의 부채의식 비슷한 걸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더 큰 부담을 떠넘기게 되는 꼴이었다. 이 경우 회사는 팀을 확실하게 리드할 경력자(A)를 구해야 한다. 내 자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을 테다. 사실 나는 신입을 뽑아도 충분히 대체될 수준이었기도 하고.

(2)가 베스트다. 나는 원하던 곳으로 옮길 수 있고, A가 남아준다면 내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물론 A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들겠지만, 그가 당장 퇴사 계획을 세워놓은 것은 아닌 듯하니 아무래도 (1)보다는 부채의식이 덜했다.

(3)은… 가슴이 좀 아플 뿐 찝찝함은 없다.

현재 나는 (3)의 경로를 따라 구축된 우주에 살고 있다. A를 대신해 줄 분이 왔고 그는 경험이 풍부했다. 그에 비하면 초라할 게 분명한 나를 존중해주며 적극적으로 팀을 리드해 줬다. A의 공백은 금방 채워졌고 나도 이후 6개월 동안 그럭저럭 잘 다녔다. 어쩌다 보니 이직도 하게 됐고, 여차저차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 (1)과 (2)의 우주에 살고 있는 아매오, 행복하니? 거기선 나도, A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커리어를 쌓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사회 속에 던져진 우리는 대체 가능성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다. 커리어 패스가 상하좌우 어느 곳을 향하든지 그 모양을 결정하는 요소가 대체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우린 항상 누군가를 대체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대체된다. 물론 여기서 '대체'는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 판단에는 나의 지분도 들어간다. 예를 들어 A는 내가 이직에 성공했다면 퇴사를 미루려고 했다. 애초 자신의 퇴사와 후임자의 입사 사이에 짧지만 공백이 생겨도 괜찮다고 판단한 건 '아매오가 그 역할을 이 정도까지는 커버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얼만큼 대체할 수 있는가. 여기에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소속이 바뀌고 동료가 바뀌고 일이 바뀐다. 그러한 변화가 발생시키는 동력으로 이번에는 상품이, 기업이, 산업이, 사회가 변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그 변화에 맞춰서 변화한다. 사회는 거대한 큐브 같다. 정육면체의 모든 면이 같은 색이 되도록 끊임없이 회전하지만, 그와 같은 상태로 무한히 수렴할 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블럭이고. 대체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면 항상 첫 알바를 그만둘 때가 떠오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로 다음주부터 근무에서 빠져야 했다. 일주일마다 스케줄 표를 만들어 공지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매니저와 알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퇴사 면담에서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대체 불가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사회생활 하면 알게 될 거예요. 최대한 아매오 님 사정에 맞춰 선택하면 됩니다."

돌이켜 보면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조언을 해준 최초의 선배가 그 매니저 아니었나 싶다. 그의 말은 '사회생활 하면 알게 될 거'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의 최초 세팅값이 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게 진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맨손보다는 뭐든 들고 시작하는 게 좋잖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한편에는 "반 년씩 텀을 두고 차례로 퇴사한 '전 직장 동료'" 둘의 명함이 놓여있다. 그 옆에 슬쩍 내 명함을 가져다 대봤다. 한때는 같은 명함을 썼던 이들의 이름이 제각기 다른 디자인의 명함에 인쇄돼 있다. 우리는 앞으로 몇 개의 명함을 더 갖게 될까. 내 명함만큼 이들의 명함도 꼬박꼬박 모으면 꽤나 재밌는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6월 23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47호 : 대체불가한 사람은 없어요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47호 : 대체불가한 사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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