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래가 쓰는 성장일지

에세이 2021년 10월 6일

비판으로 움직이는 사람, 칭찬으로 움직이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꽤 오랫동안 나는 내가 비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내 실력으로 착각하는 것보다는 한 문제를 틀리더라도 꼼꼼하게 오답노트에 기록하는 편이 훨씬 쿨해보였으니까. 편안하고 좋은 것에 머무는 것보다는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를 딛고 나아가는 모습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으니까.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춤추는 고래다. 삶의 가장 큰 동력을 칭찬에서 얻는다. 좋아하는 걸 얘기할 때 꼽는 세 가지는 사람과 술과 글. 전부 다 언젠가 한번쯤 칭찬 받았던 것들이다. "아매오는 사람들이랑 두루두루 친하잖아", "아매오 술 잘 먹네", "아매오 군은 글을 참 잘 쓰네요" 같은 말들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립서비스의 농도를 경계하면서도 나는 결국 나에게 닿았던 좋은 말들을 뜯어 먹으며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칭찬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비판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아무 생각도 않을 거라 여기면 곤란하다. 오히려 반대다. 칭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비판 받을 만한 부분이 어딘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비판에서는 웬만하면 큰 동력을 얻기 어려울 뿐이다. 다 떠나서 이미 아는 것을 누군가 짚어준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새롭게 느껴질 리 없으니까. "나도 알아!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건 결핍이다. 욕망 자체가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칭찬에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이 칭찬 받을 만한 부분이 어딘지, 특출난 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꼭 있을 것이다. 그거 겸손 아니다. 실제로 아니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같은 칭찬을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겨우 실눈 뜨고 쳐다보는 게 그들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때 비로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칭찬에서 얻은 동력은 단지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고 잘하는 걸 더 잘 하게 만드는 데 모두 소진되지 않았다. 틀린 부분을 고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도 충분히 쏟을 수 있을 만큼 남았다. 처음부터 칭찬과 비판은 클리어 해야 하는 스테이지 순서만 다를 뿐 성장에 다다르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같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 각자에게는 각자 맞는 길이 있는 법이다.

월말이면 팀별로 모여 업무회고를 한다. 데일리 루틴 업무, 프로젝트 업무, 이번달 세웠던 목표, 다음달 달성하려는 목표, 잘 했다고 생각한 부분(Keep),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Problem), 시도해볼 만한 부분(Try) 등을 적고 이야기를 나눈 뒤 상호 피드백을 적는다. 팀원과의 대화나 피드백은 특히 KPT(Keep, Problem, Try)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래서 이쪽 단락을 더욱 길고 자세하게 적는다. 하십시오체와 음슴체로 문체부터 다르다.

좀 우습긴 하지만 현재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확실하게 칭찬 받았던 부분이 회고다(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배울 점을 찾아내는 모습과 그것을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에 인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본 업무가 아니라 그것을 되돌아 보는 일에서 제일 큰 인정을 받는 게 썩 유쾌하기만 하진 않지만 그래도 칭찬은 좋다. 어쨌든 내가 느낀 것들을 글로 정리해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얘기니까. 그것도 내 장점이지.

한편으로 평소의 팀워크에 있어서도 이러한 성향 파악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전제하게 된다. 내가 비판에 심드렁한 만큼 상대는 칭찬에 무감각할 수도 있고, 내가 칭찬에 춤을 추는 만큼 상대는 비판에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인 피드백은 물론 손발을 맞춰가며 일할 수 있는 것이다.

KPT를 개인 차원에서 다시 풀면 칭찬 받을 만한 부분, 비판 받을 만한 부분,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아는 것은 일종의 기술로서 '칭찬X비판=성장'의 방정식을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풀도록 돕는다. Better than Yesterday.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결국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며 사니까. 지금은 미약하기 그지 없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빽빽하게 채워 넣은 회고란이 더 큰 성장을 떠받치는 단단한 토양이 돼줄 것이라고 믿는다.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10월 6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60호 : 춤추는 고래가 쓰는 성장일지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60호 : 춤추는 고래가 쓰는 성장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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