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을 대하는 직장인 유형 세 가지

에세이 2021년 11월 3일

스몰토크 소재 풍년이다. <D.P.>로 시작해 <환승연애>, <오징어 게임>을 거쳐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와 <갯마을 차차차>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5대 콘텐츠 덕분이다. 이것들만 클리어해도 부족한 말발로 인해 생기는 오디오 공백에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취향존중이 미덕이고 맞춤형 콘텐츠가 대세인 개인 밀실의 시대에 광장의 탁 트인 공기를 마실 수 있다니! 지금도 매우 드물지만 앞으로는 더 귀해질 현상이다. 실컷 누려야 한다.

그에 못지 않은 소재가 또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재 국내 1차 접종률은 이미 80%를 넘어섰고, 2차 접종률도 근접한 수치를 기록하며 따라가고 있다. 특히 2차 접종 후 14일이 지난 이들은 인원 제한 지침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는데, 주변에 그런 '투명인간'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걸 보며 80%라는 수치를 체감한다. 그러고보니 이번주를 기점으로 나도 투명인간이 됐다. 단계적 일상회복도 함께 시작되며 메리트가 줄긴 했지만.

이정도면 꽤 공평한 축에 들지 않나. 백신 접종 후에 찾아오는 컨디션 난조 현상 말이다. "화이자는 2차가 진짜라던데요?" "모더나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팔 뻐근한 게 생각보다 오래 가네요." 잘 몰라도 이런 말로 대화를 이어가면 얼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맞은 사람이 나중에 맞은 사람에게 자신의 남은 타이레놀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자주 목격된다. 타이레놀 권하는 사회라니. 얀센 접종자는 그 따뜻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주변 직장인들을 관찰한 결과 2차 접종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불안한눈빛형
    접종 당일과 그 다음날이 휴일이 되도록 일정을 잡는다. 이틀 간 누워있을 생각이기 때문에 밀린 드라마나 웹툰 등을 체크해둔다. 평소에도 몸살 기운이 느껴지면 뜨끈한 국물과 풀파워 보일러(또는 전기장판), 두꺼운 이불로 강력한 초동조치를 취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 존버형
    평일 오전 이른 시간에 접종 후 출근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 이제 좀 오네요"라며 앓는 소리를 낸다. 휴일을 하루라도 사수하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간혹 접종 다음날까지 출근하는 용자가 나타날 때도 있지만 대개 반차로 결말이 맺어지곤 한다. 가장 보편적인 유형.
  3. 하드워커형
    거의 없다. 딱 한 명 봤는데 너무 신기해서 소개하고 싶어 억지로 넣었다. 접종 당일은 생각보다 괜찮고 다음날이 힘들며 3일 차에는 살짝 띵하다는 후기를 듣고는 금요일 가장 늦은 시간으로 예약하더라. 물어보진 않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아끼겠다는 생각이겠지. 어떤 면에선 참 대단하다.

사실은 공평하지 않다. 백신 접종 후에 찾아오는 컨디션 난조 현상, 그에 대한 태도 말이다. 백신 휴가를 주는지, 주지 않는다면 연차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 혹시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비할 여건이 마련돼 있는지 등에 따라 우리는 위에 나열한 유형 중 어디든지 해당될 수 있다. 심지어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그저 나의 주변을 관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부가 아니겠지.

이것은 백신 접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공평하지 않은 '쉼'에 대한 선택권 이야기다. 우리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가. 여기에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남은 연차가 너무 많아 연말에 자체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할 수도 있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자조적 블랙코미디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일의 대립항으로서 쉼이 아닌 온전히 쉼 자체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워라밸'이라는 단어도 은퇴할 때가 됐다.


Credit

글 | 아매오
그림 | 미드저니로 제작
발행일 | 2021년 11월 3일

*이 에세이는 풀칠레터 64호 : 백신 접종을 대하는 직장인 유형 세 가지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해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같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레터 64호 : 백신 접종을 대하는 직장인 유형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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